'해방의 날(Liberation Day)' 1년 후
'해방의 날(Liberation Day)' 1년 후

'해방의 날(Liberation Day)' 1년 후

지난해 4월 미국 대통령의 전 세계 관세 발표 이후, 우려했던 만큼 경제가 더 급격히 무너지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멀리사 던(Melissa Dunne)은 이란 전쟁이 이런 흐름을 바꿔놓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마치 모두가 마라톤을 뛰고 있는데, 결승선이 계속 더 멀리 옮겨지는 듯한 느낌입니다.

불안한 10년(Uneasy Decade) 속에서 우리는 연이어 경제 충격을 겪어왔습니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이 ‘해방의 날(Liberation Day)’이라 명명한 2025년 관세 발표까지, 물가를 끌어올린 일련의 위기는 많은 사람들에게 경제에 대한 불안을 안겼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더해, 2월 말에는 이란 전쟁까지 시작됐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2025년 4월 2일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상호 관세(Reciprocal Tariffs)’라고 적힌 대형 패널을 들어 올린 지 1년이 지난 지금, 캐나다를 비롯한 여러 나라의 소비자들은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상황을 예의주시 하게 되었습니다.

캐나다에서는 지금의 경제 상황을 ' 인내의 경제(Endurance Economy)' 라고 부릅니다. 입소스 캐나다 Public Affairs 부문 수석부사장 그레고리 잭(Gregory Jack)은 이를 두고 “단기 대응에 매몰되고, 방어적인 소비가 이어지며, 낙관은 줄고, 가격에 대한 집착은 더 강해지는 장기 국면”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는 “캐나다인들은 자신들이 겪고 있는 경제적 압박이 일시적인 혼란이 아니라, 지속되는 구조적 문제라는 점을 체감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미국산 제품 안 사요

늘 차분한 이미지로 비유되곤 하는 캐나다 소비자들도 지금은 여전히 강한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첫 번째 입소스 모빌리티 리포트(Ipsos Mobility Report)에 따르면, 특정 국가의 자동차 구매를 피하겠다고 응답한 사람들 중 캐나다인은 미국산 차량을 피하겠다고 말할 가능성이 가장 높았습니다.

잭은 “이는 미국이 제기한 관세 위협과 지난 1년간 이어진 발언들에 대한 매우 직접적이고 감정적인 반응으로 보인다”며, “2025년에는 ‘Buy Canadian’ 움직임이 나타났고, 이것이 점차 ‘Avoid American’에 가까운 형태로 바뀌고 있다”고 말합니다.

또한 그는 “미국산 차량을 피하는 것은 캐나다 소비자들이 지갑으로 자국 경제를 지키고, 국경 남쪽에 분명한 메시지를 보내는 하나의 실질적인 방식”이라고 설명합니다.

이 같은 소비자 반응은 캐나다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다른 나라 사람들 역시 소비를 통해 자신의 입장을 드러내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강조해온 'Buy American' 구호는, 아이러니하게도 세계 곳곳에서 자국 중심 소비를 자극하는 계기가 된 것으로 보입니다. 31개국 평균 48%는 브랜드의 출신 국가를 이유로 특정 자동차를 피하겠다고 답했습니다. 이 가운데 가장 많이 기피 대상이 된 것은 중국 브랜드(31개국 평균 41%)였고, 그다음은 인도 브랜드(38%), 미국 브랜드(24%)였습니다.

 

 

입소스 미국 법인은 지난해 가을 “미국 브랜드는 수십 년 동안 미국의 가장 강력하고 상징적인 경제·문화 수출 자산 중 하나였다”고 짚은 바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진 듯합니다.  '브랜드 아메리카(Brand America) 2025' 보고서에 따르면, 10개국 기준으로 ‘미국 브랜드’라는 정체성은 이제 신뢰와 구매 의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인과 연결되고 있습니다.

또한, 입소스 글로벌 평판 모니터(Ipsos Global Reputation Monitor)는 “미국계 기업에 대해 윤리, 환경, 경제적 영향 측면에서 뚜렷한 부정적 연상이 형성되고 있다”고 보여줍니다. 지난해 가을 조사에서는 30개국 평균 22%가 자국과 미국의 비즈니스 및 무역 관계를 부정적으로 평가했는데, 이는 중국(14%), 인도(13%)보다 높은 수치였습니다.

 

 

고통은 큰데, 얻는 것은 적은가?

트럼프 관세의 타당성에 의문을 제기한 것은 미국 밖 소비자들만이 아닙니다.
올해 초 입소스의 미국 소비자 동향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거의 4분의 3(74%)은 관세가 자신이 사는 상품 가격을 올릴 것이라고 봤습니다. 반면 수입품 관세가 미국 내 일자리를 더 만들 것이라고 생각한 비율은 28%에 그쳤습니다.

 

 

입소스 미국 What the Future의 편집자 맷 카마이클(Matt Carmichael)은 “관세 지지율이 낮은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 가격이 오른다는 단점은 바로 체감되기 때문”이라며 “미국인의 절반(48%)은 월별 고정지출을 내고 나면 남는 돈이 거의 없고, 고소득 가구에서도 3명 중 1명은 같은 상황이라고 답했다”고 설명합니다.

 

그는 이어 “가격이 오르면 사람들은 그 영향을 즉각적으로 느낀다. 반면 관세의 긍정적 효과로 제시되는 것들은 훨씬 장기적인 결과인데, 대부분의 미국인은 그것이 실제로 일어날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며, “공화당 지지층에서도 절반이 안 되는 42%만이 제조업 리쇼어링으로 일자리가 늘어날 것이라고 보고, 민주당 지지층에서는 그 비율이 17%에 불과하다”고 덧붙였습니다.

일시적이던 물가는 이제 고착화됐다

‘해방의 날’ 이전인 2021년 5월, 당시 미국 재무장관 재닛 옐런(Janet Yellen)은 코로나19 시기 가격 압박 속 인플레이션을 두고 "일시적인 현상(Transitory)" 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는 빗나간 전망이었습니다.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소비자들은 이제 수년째 고착화된 인플레이션과 씨름하고 있습니다.

입소스의 월간 ' What Worries the World' 보고서에 따르면, 모니터에 따르면, 물가 상승은 이번 10년 들어 주변 이슈에서 핵심 이슈로 올라섰습니다. 2020년대 초만 해도 28개국 평균 11%만이 이를 자국의 주요 문제로 꼽았지만, 2023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 이후 생활비 우려는 29개국 평균 43%까지 치솟으며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지난해 4월 무렵 생활비 우려는 30% 안팎에서 정체되었고, 트럼프 대통령이 전 세계 관세를 발표하기 직전인 지난해 3월에도 29개국 평균 33% 수준이었습니다. 올해 3월에는 이 우려가 30개국 평균 29%로 4%포인트 낮아졌지만, 여전히 실업과 빈곤·불평등과 함께 세계 2위 우려 요인으로 남아 있습니다

다만 이 수치는 이란 전쟁이 본격화되기 전 조사된 결과입니다. 최신 What Worries the World 조사는 2월 20일부터 3월 6일 사이에 진행됐고, 일부 국가는 2월 28일 이란 전쟁이 시작되기 전에 조사에 들어가고 종료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2026년 3월 리포트의 모든 조사는 3월 8일 국제유가가 4년 만에 처음으로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선 이전에 완료됐습니다. 

그럼에도 최근 충격이 오기 전부터 생활비 부담은 이미 소비자들을 짓누르고 있었습니다. 인플레이션은 30개국 중 6개국에서 가장 큰 걱정거리로 꼽혔는데, 싱가포르(56%, 전년 대비 -2%p), 튀르키예(51%, -3%p), 캐나다(49%, +1%p), 인도(47%, +11%p), 호주(43%, -1%p), 미국(38%, -5%p)이 여기에 포함됐습니다.

잭은 “인플레이션 우려가 여전히 가장 먼저 떠오른다는 사실은, affordability crisis가 이제 끝이 보이지 않는 구조적 문제로 바뀌었음을 보여준다”며, “2020년에는 인플레이션이 경기 순환의 일시적 현상처럼 보였지만, 지금은 많은 가구의 삶을 규정하는 배경이 됐다”고 말합니다.

역사는 완전히 반복되지는 않지만, 종종 비슷한 방식으로 되살아납니다.

2022년 3월,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겼을 때도 생활비 위기는 급격히 악화됐습니다. 이번에도 2월 28일 이란 전쟁 발발 이후 몇 주 만에 유가가 다시 급등하면서, 더 큰 고통이 닥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

최근의 경험은 분명한 신호를 줍니다. 만약 이란 전쟁이 장기화된다면, 세계 곳곳에서 물가 불안이 다시 한 번 길게 이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짙어지는 경기 비관론

지속적인 물가 압박 속에서, 많은 사람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전 세계 관세를 발표하기 전부터 이미 자국 경제에 대해 어두운 인식을 갖고 있었습니다.

지난해 2~3월 기준 29개국 평균 65%는 자국의 현재 경제 상황이 나쁘다고 답했습니다. 그리고 ‘해방의 날’ 이후 1년이 지난 시점인 올해에는 이 비율이 30개국 평균 60%로 소폭 낮아졌습니다.

G7 국가들을 보면, 지난해 봄 트럼프 관세 발표 이전부터 이탈리아를 제외한 모든 국가에서 경제 심리는 팬데믹 이전 수준을 밑돌고 있었습니다. 이탈리아는 팬데믹 이전부터도 경제 인식이 상당히 낮은 편이었습니다.

 

 

지난 12개월 동안 일부 국가는 미국과 무역 합의를 추진하는 한편, 동시에 다른 동맹국과의 관계 강화에도 나섰습니다.

캐나다의 마크 카니(Mark Carney)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과의 관세 협상이 난항을 겪는 동안 호주부터 영국에 이르기까지 여러 나라와 관계를 강화하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다만 호주 같은 "중견국(middle powers)" 과의 협력을 강화하려는 이런 시도는 성과가 나타나기까지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입소스 호주 Public Affairs 부문 부대표 데이비드 엘리엇(David Elliott)은 “단기적으로나 중기적으로 생활비 측면에서 당장 뚜렷한 이익이 보이기는 어렵다”면서도, “장기적으로는 무역 관계 개선이 글로벌 무역 질서가 흔들리는 시기에 우리의 경제 안보에 도움이 된다”고 말합니다.

캐나다인들 역시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습니다.

잭은 “지난 1년 동안 카니 총리가 캐나다 경제를 다시 움직이기 위해 여러 시도를 했지만, 캐나다인들은 여전히 팬데믹 직전보다 형편이 더 나빠졌다고 느끼고 있다”고 말합니다.

"오타와에서 보는 재무제표와 가정에서 가계부를 보며 나누는 대화 사이에는 괴리가 있습니다. 한마디로, 캐나다인들은 지쳐 있습니다."고 덧붙였습니다.

이미 지쳐있던 소비자들

캐나다 온타리오의 파리에서 프랑스 파리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 소비자들은 이미 상당한 피로감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번 10년 동안 이어진 여러 위기 속에서, 다수는 이미 지속적인 경제적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습니다.

입소스 입소스 생활비 모니터(Cost of Living Monitor)에 따르면, 전 세계 인플레이션이 정점에 달했던 2023년 초 29개국 평균 61%는 재정적으로 ‘간신히 버티고 있다’거나 ‘상당히 또는 매우 어렵다’고 답했습니다. 그리고 2025년 8~9월에도 이 수치는 30개국 평균 59%로 거의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즉, 재정적 어려움을 느끼는 사람들의 비중은 여전히 높게 유지되고 있었습니다.

이란 전쟁이라는 새로운 변수

이제 6주 차에 접어든 이란 전쟁은 전 세계 소비자들을 다시 흔들고 있습니다. 입소스의 국가별 조사에 따르면 미국 , 캐나다 , 프랑스 , 영국 국민들은 앞으로 닥칠 상황에 대해 상당한 우려를 느끼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이미 더 심각한 인플레이션과 심지어 경기 침체 가능성 까지 거론하고 있습니다.

잭은 “지난 1년 동안 지정학적·경제적 충격이 계속 잇따르면서, 캐나다 소비자뿐 아니라 세계 곳곳의 많은 소비자들이 극심한 불확실성과 만성적인 우려 속으로 밀려 들어갔다”고 말합니다.

그는 이어 “이런 심리적 영향으로 소비자들은 예측 가능성과 안정성에 더욱 집착하게 됐고, 위험을 감수하거나 장기적인 재정 결정을 내리는 데도 점점 소극적이 됐다”, “이른바 ‘트럼프 효과(Trump Effect)’는 캐나다 소비자를 ‘인내의 경제’로 더 빠르게 밀어 넣었고, 이제 소비자의 가장 큰 목표는 그저 이 폭풍을 버텨내는 것이 됐다”고 설명합니다.


멜리사 던(Melissa Dunne)은 캐나다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입소스의 시니어 데이터 저널리스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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